텍사스 덮친 ‘100년 만의 홍수’…’캠프 미스틱’, 비극의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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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중부 이례적 폭우로 최소 70명 사망, 과달루페강 45분 만에 8m 수위 급상승
100년 전통 소녀 여름캠프 ‘캠프 미스틱’ 직격탄…캠프 원장 등 숨지고 소녀 11명 실종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가능성, 과거 유사 참사 재조명되며 ‘인재’ 논란도 제기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지난 4일 새벽(현지시간), 텍사스 중부 힐 카운티 지역을 덮친 전례 없는 폭우와 그로 인한 최악의 홍수로 현재까지 최소 7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특히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소녀 여름캠프 ‘캠프 미스틱’이 급류에 휩쓸리면서 캠프 원장을 포함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아직도 10여 명의 어린 소녀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미국 전역이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순식간에 8m 불어난 강물…지옥으로 변한 독립기념일 새벽

비극은 모두가 잠든 금요일 새벽에 시작됐다. 텍사스 중부 지역에 시간당 3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과달루페강 수위가 불과 45분 만에 26피트(약 8m)나 치솟는 ‘돌발 홍수(Flash Flood)’가 발생했다. 국립기상청(NWS) 데이터에 따르면 한때 강 수위는 5분마다 1피트(약 30cm)씩 상승할 정도로 무서운 속도였다.

성난 강물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강가의 주택과 차량, 다리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당시 캠프 프로그램 디렉터였던 엘리자베스 스위트는 “새벽 3시 11분에 일어나 아이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지만, 4시에는 이미 지붕 위로 올라가야 했고 물이 바로 턱밑까지 차올랐다”며 “한 시간 만에 수위가 20피트 이상 상승한,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재앙적인 자연재해였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번 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커(Kerr) 카운티에서만 21명의 아동을 포함해 59명이 숨졌고, 트래비스, 버넷 등 인근 5개 카운티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며 주 전체 사망자는 70명으로 늘어났다. 구조 당국은 헬리콥터와 드론, 보트 등을 총동원해 850명 이상을 구조했지만, 도로와 통신이 두절된 곳이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스틱 소녀들’의 꿈 앗아간 비극

이번 참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소식은 헌트시에 위치한 기독교 소녀 여름캠프 ‘캠프 미스틱’에서 전해졌다. 1926년 설립돼 약 100년간 텍사스 유력 가문의 딸들이 거쳐 가며 명성을 쌓아온 이 캠프는 ‘미스틱 소녀들’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던 곳이었으나, 이날의 홍수로 한순간에 비극의 현장이 됐다.

사고 당시 캠프에는 8세부터 10대까지 약 750명의 소녀들이 머물고 있었다. 특히 강가 저지대에 위치했던 어린 소녀들의 숙소가 가장 먼저 급류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캠프 직원들은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고지대로 대피시켰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1974년부터 캠프를 운영해 온 원장 딕 이스트랜드가 아이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전 캠프 참가자 페이지 섬너는 지역 신문 ‘커빌 데일리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며 “그는 수백 명의 소녀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현재까지 캠프에 있던 소녀 11명과 카운슬러 1명이 실종 상태이며, 당국은 생존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오두막에 있던 모든 소녀를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총력 대응을 약속했다.

“알고도 못 막았나”…’인재’ 논란과 당국의 대응

참사의 규모가 드러나면서 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인재’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텍사스 비상관리국(TDEM)은 참사 이틀 전인 2일, 이미 홍수 위협을 경고하며 구조팀을 사전 배치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피해가 집중된 커 카운티는 제대로 된 경보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롭 켈리 커 카운티 최고 행정관은 “왜 캠프를 미리 대피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나도 모른다”고 답했으며, “이런 규모의 홍수가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국립기상청 역시 홍수 주의보를 발령했지만, 실제 강우량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주민들과 캠프 참가자들은 위험을 인지하고 대피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 일대를 연방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지원을 지시하며 “끔찍한 비극으로 고통받는 모든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죽음의 골짜기’의 비극…과거에도 유사 참사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가 텍사스 힐 카운티의 지형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지역은 가파른 언덕과 얇은 토양층으로 인해 비가 내리면 흡수되지 못하고 빠르게 계곡으로 흘러들어 돌발 홍수에 매우 취약하다. 이 때문에 ‘돌발 홍수 골목(Flash Flood Alley)’이라는 악명 높은 별명까지 붙어있다.

실제로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주이며, 힐 카운티 지역에서 비극은 반복돼 왔다. 특히 이번 참사는 1987년 7월, 거의 같은 장소에서 발생했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과달루페강이 범람하면서 교회 캠프에 참가했던 10대 청소년 10명이 탄 버스가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이번 홍수는 1987년 당시의 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기록됐다.

이 밖에도 1978년 열대성 폭풍 아멜리아, 1998년, 2002년, 2015년 대홍수, 2017년 허리케인 하비 등 텍사스는 주기적으로 대규모 홍수 피해를 겪어왔다.

기후변화가 키운 재앙…엎친 데 덮친 격 ‘허리케인’ 북상

과학자들은 이번 홍수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게 되고, 이는 국지성 폭우의 강도와 빈도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화로 인한 불투수성 지표면의 증가 역시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유출량을 늘려 피해를 가중시킨다.

설상가상으로 홍수 피해 지역에는 또 다른 재난이 다가오고 있다. 국립허리케인센터(NHC)는 열대성 폭풍 ‘베릴(Beryl)’이 허리케인으로 세력을 키워 8일 오전 텍사스 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했다. 이에 따라 휴스턴 등 주요 도시는 비상 체제에 돌입했으며, 이미 홍수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추가 폭우와 강풍이 닥칠 경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수색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실종된 ‘미스틱 소녀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기도가 미국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참혹한 비극의 상처와 함께, 기후변화 시대에 반복되는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거운 과제가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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