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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젤렌스키, 바티칸 회동… 평화 협상 향한 중대 걸음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교황 프란치스코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기 위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였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나는 장면이 포착되며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이 집중됐다. 뜻밖의 두 정상 간 회동은 장례식이라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Good meeting. We discussed a lot one on one. Hoping for results on everything we covered. Protecting lives of our people. Full and unconditional ceasefire. Reliable and lasting peace that will prevent another war from breaking out. Very symbolic meeting that has potential to… pic.twitter.com/q4ZhVXCjw0
— Volodymyr Zelenskyy / Володимир Зеленський (@ZelenskyyUa) April 26, 2025
두 정상의 만남은 26일(현지시간), 교황 프란치스코 장례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의 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 속에는 푸른 정장의 트럼프 대통령과 검은 상·하의 차림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금속 의자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주변의 분주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은 대화에만 몰두한 모습이었다.
백악관 스티븐 청 공보국장은 회담 직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비공개로 만나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가졌다”고 발표하며, 구체적인 회담 내용은 추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 ‘X’에 “매우 상징적인 대화였으며, 만약 공동의 결과를 도출한다면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세르히 니키포로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회담이 약 15분간 진행됐으며, 향후 협상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동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측이 공개한 또 다른 사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스타머 총리, 마크롱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대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은 장면은, 영국과 프랑스가 두 정상의 만남을 독려하거나 중재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장례식이라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방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평화 정착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acron, Starmer, Trump and Zelensky gathered pic.twitter.com/TuIHJXRlRJ
— The Times and The Sunday Times (@thetimes) April 26, 2025
두 정상의 만남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 타결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집권 시 ‘첫 100일 이내 종전’을 목표로 내세운 바 있으며, 이 시한이 다가오면서 백악관의 외교적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현재 평화협상 과정에서는 두 가지 상이한 구상안이 맞서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휴전 후 영토 문제를 논의하고,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집단방위 조항에 준하는 수준의 안보 보장을 받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보다 신속한 종전을 위해 영토 문제에서 일부 양보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바티칸 회동은 이러한 이견을 좁히고 타협점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알렉스 위트코프가 최근 네 번째로 러시아를 방문한 시점과 맞물려 회담이 성사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자로서 본격적인 역할에 나섰음을 시사한다. 교황 장례식이라는 다자외교 무대를 활용해 비공식적이고 신속한 대화를 시도한 외교적 수완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회동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로마를 떠나는 전용기 안에서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비판했다. 그는 “푸틴이 지난 며칠간 민간인 지역과 도시, 마을에 미사일을 발사할 이유가 없었다”며, “그가 전쟁을 멈추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슬리려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을) 다르게 다뤄야 할 수도 있다”면서 “은행 제재(Banking Sanctions)나 세컨더리 제재(Secondary Sanctions)를 고려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 직후 나온 발언으로, 대화 중심이던 기존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푸틴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인도주의적 우려와 함께 조속한 종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향후 미국의 대러 전략에 변화를 예고한다.
이번 회동은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냉랭했던 분위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의 지원에 대한 감사 표현이 부족하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군사·재정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비유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바티칸 회동에서는 “매우 생산적”이라는 백악관의 평가와 “역사적 잠재력”을 언급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반응이 전해지면서, 양측이 최소한 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에 대한 굴복을 경계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미국의 지속적 지원이 전쟁 수행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장례식은 50여 개국 정상과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대규모 외교 행사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교황에게 직접 조의를 표했다.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기자들에게 “장례식에서 공식 회담을 하는 것은 다소 무례할 수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중요한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윌리엄 왕세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고, 폴란드·포르투갈·프랑스 정상, 스페인 국왕 등 여러 지도자들과도 교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 군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으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미사 중 두 정상은 마크롱 대통령 등과 나란히 앉아 교황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생전에 “벽이 아닌 다리를 놓으라”고 강조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평화의 사도였던 교황의 장례식에서, 전쟁을 겪는 국가의 정상과 그 동맹국 정상들이 평화를 논의한 것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