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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트럼프-뉴섬 정면충돌…LA 시위, 이민 정책과 주권 논쟁의 불씨로
로스앤젤레스(LA)에서 벌어진 연방 이민단속국(ICE)의 대규모 작전이 시민 시위로 확산되며, 트럼프 대통령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간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를 ‘이민자 폭동’으로 규정하고 연방군 투입을 강행했으며, 이에 맞서 뉴섬 주지사는 “헌법적 절차를 무시한 주권 침해”라며 연방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 “LA는 침략당한 도시”
트럼프 대통령은 6월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한때 위대한 도시였던 로스앤젤레스가 불법 이민자들과 범죄자들에게 점령당했다”며 “폭동 진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멕시코 국기를 흔드는 시위 장면을 들어 “이것은 단순한 시위가 아닌, 국가적 침략”이라고 규정했다.
백악관의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도 이 같은 입장을 거들며 “미국이 불법 외국인들에게 점령당했다. 민주당 폭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섬 주지사를 겨냥해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인가”라며 날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찰을 공격하고 차량에 불을 지르는 폭력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연방군 투입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이어 “개빈(뉴섬)도 내 개입을 내심 반가워할 것”이라는 언급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희화화한 듯한 발언도 덧붙였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뉴섬 주지사 체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톰 호먼(전 ICE 국장)이었다면 체포했을 것”이라며 “그건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현직 주지사 체포를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며, 법적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뉴섬 주지사 “위기 조작과 주권 침해, 좌시하지 않겠다”
뉴섬 주지사는 최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고의로 악화시키고 있다. 위기를 조작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그는 “연방군 투입은 주 정부의 사전 동의 없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헌법적 절차를 위반한 중대한 침해”라고 밝혔다.
주지사 측은 주 방위군을 연방 지휘 하에 둔 조치가 명백히 불법이라며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뉴섬은 “대통령이 주지사의 체포를 언급하는 것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이것은 단지 정치가 아니다. 우리는 헌법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위대를 향해 “폭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빌미를 줄 뿐이다. 평화적으로 목소리를 내자”고 당부했으며,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체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민자 단속 문제에 대해서도 뉴섬 주지사는 “우리는 범죄자 색출에 동의하지만, 비범죄 이민자까지 겨냥한 무차별 단속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이후 1만 명 이상의 수감자를 ICE에 인계해 왔다는 점을 들어 “연방과의 협력은 하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위의 불씨: ICE 급습과 강제 단속
사태의 시작은 ICE가 5월부터 LA 히스패닉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단속을 강화하면서 비롯됐다. 최근에는 도매 의류 창고와 홈디포 매장을 급습해 44명을 체포했다. 백악관은 ICE 요원들에게 하루 최소 3,000명의 체포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단속 작전 중 하나다.
시위는 처음엔 평화적으로 시작됐지만, 일부 시위대가 연방 건물에 돌을 던지고 차량에 불을 지르며 충돌이 격화됐다. LA 경찰국은 29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ICE는 “1,000명 이상이 연방 건물을 포위하고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시민 단체들은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연방군 투입의 파장과 이례성
트럼프 대통령은 6월 7일,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 2,000명과 해병대 병력 700명을 LA에 투입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이는 뉴섬 주지사와 캐런 배스 LA 시장의 명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동진압법(Insurrection Act)’을 직접 발동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근거로 연방군 투입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주지사의 동의 없이 주 방위군을 연방 지휘 하에 두는 사례가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헌법상 권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방부는 LA 인근 캠프 펜들턴에 배치된 해병대가 고도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고 발표했으며, 필요시 동원될 수 있다고 밝혔다.
통계로 본 ‘이민자 침략’ 주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이민자 침략”으로 규정했지만, 연방 통계는 이와 상반된 그림을 보여준다.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미등록 이민자 수는 2010년 약 290만 명에서 2022년에는 26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폭력 범죄율 역시 하향세이며, 캘리포니아의 실업률은 전국 평균과 유사한 수준이다. 세계 4위 경제 규모로 성장한 캘리포니아는 실제로 이민자 인구가 감소세에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감소가 강경 단속 때문이 아니라 본국 경제 사정 개선, 높은 생활비, 그리고 이민자 평균 연령 상승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정치적 셈법과 대선 구도
이번 충돌은 트럼프 대통령과 뉴섬 주지사 모두에게 정치적 시험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 이슈를 2024년 대선에 이어 지지층 결집의 축으로 삼고 있으며, 민주당의 텃밭인 캘리포니아를 실패 사례로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 내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립을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가 연방 정부 예산 집행에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뉴섬 주지사는 연방정부의 주 방위군 동원 조치가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연방 법원에 긴급 금지 명령을 요청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도 “이 조치는 권력 남용”이라며 별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번 사건은 단지 이민 문제를 넘어, 연방정부의 군 통수권과 주정부의 자치권이라는 미국 헌법의 근간을 건드리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역사와 반복: LA와 이민자 운동
LA는 1990년대부터 이민자 권리 보호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2006년 반이민 연방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는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으며, 이는 미등록 이민자를 향한 단속에 대한 조직적 반발의 상징이 됐다.
이번 사태를 놓고 일부 운동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대응은 이민자 억압이 아닌 뉴섬 주지사 견제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1994년 공화당의 ‘Proposition 187’ 추진은 오히려 히스패닉 유권자의 결집을 불러오며 장기적으로 민주당의 강세 기반을 다지는 결과를 낳은 바 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의 군 투입 결정을 비판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도 “이주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상황은 단순한 정책 충돌을 넘어 미국 정치, 헌법 질서, 시민사회 전반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법원의 판단과 정치적 협상이 사태의 향방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미국 내 갈등의 진원지로 떠오른 LA를 향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