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제공해 심해저 채굴 계획 추진… 유엔기구·국제법 충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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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국제 해역에서의 심해저 광물 채굴을 허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서명을 추진, 국제 사회의 거센 반발과 함께 심각한 법적·외교적 마찰을 예고한다. 이는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에 따라 국제 해역의 해저 자원 관리를 전담하는 국제해저기구(ISA)의 승인 절차를 사실상 우회하려는 시도로, ‘바다의 헌법’으로 불리는 국제 규범 체계를 정면으로 흔드는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의 독자 행보: ISA 우회와 중국 견제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기업들이 국제 해역 심해저에서 광물 자원을 탐사하고 채굴, 가공하는 역량을 신속히 개발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를 통해 “미국이 심해 광물 탐사 및 개발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공언하며, 사실상 독자적인 해저 자원 개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번 행정명령의 핵심은 심해 채굴을 원하는 미국 기업들이 유엔 산하 기구인 ISA의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승인 절차 대신,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같은 자국 기관의 규정에 따라 신속하게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

로이터 통신은, 이 행정명령이 기업들에게 ISA를 거치지 않는 대체 허가 절차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는 1980년에 제정된 미국의 국내법(심해 고정 광물 자원법, Deep Seabed Hard Mineral Resources Act)을 근거로 국제 수역에서의 채굴 허가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표면적으로는 첨단 기술과 군사 안보에 필수적인 니켈, 코발트, 망간,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목표로 한다. 특히 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풍력 터빈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소재인 이들 광물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 지배에 맞서 태평양 등지의 심해저 자원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국제법과의 충돌: 유엔 해양법 협약과 ISA 권위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독자 노선은 국제 해양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및 그에 따라 설립된 ISA의 존재 이유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1982년 채택된 UNCLOS는 특정 국가의 관할권 밖에 있는 공해와 심해저(the Area)를 ‘인류 공동 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으로 규정하고, 이 지역의 모든 광물 자원 관련 활동을 조직하고 통제하며 해양 환경을 보호할 배타적 권한을 ISA에 부여했다. 즉, 국제 해역에서의 심해저 자원 개발은 반드시 ISA의 승인과 감독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합의이자 규범이다 .

현재 ISA는 상업적 목적의 심해 채굴을 허용한 적이 없으며, 탐사 목적의 활동만 제한적으로 승인해 왔다. 상업 채굴 허가를 위한 구체적인 규칙과 규정, 절차(채굴 규약)는 2016년부터 논의되어 왔으나, 회원국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과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로 인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ISA를 건너뛰고 독자적으로 채굴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은 UNCLOS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UNCLOS의 비준을 거부하여 ISA의 정식 회원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A 회의에 옵서버로 참여하며 국제 규범 형성에 관여해 온 미국이 이제 와서 국내법을 내세워 국제법 체제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위가 국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다자주의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고 국제 사회의 규범 기반 질서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

국제 사회 반응과 외교적 파장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이 알려지자 즉각적인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특히 심해 자원 개발에 적극적인 중국은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AFP통신에 “미국의 (독자적) 승인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국제 사회의 전반적인 이익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중 간 무역 갈등과 기술 패권 경쟁이 해저 자원 영역으로까지 확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는 자원 경쟁을 벌이는 다른 국가들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ISA 내에서 어렵게 진행 중인 채굴 규약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는 환경 보호를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많은 동맹 및 우방국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ISA 내부 논의와 ‘2년 룰’의 딜레마

ISA 내부에서는 심해 채굴 규약 마련을 둘러싼 논의가 수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2021년 7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가 캐나다 광업 기업 더 메탈스 컴퍼니(TMC)를 대신하여 ISA에 상업 채굴 의사를 밝히며 ‘2년 룰’ 조항을 발동시킨 것이 논의에 불을 지폈다. ‘2년 룰’은 회원국이 채굴 의사를 통보하면 ISA가 2년 안에 관련 규정을 마련하여 그 신청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

그러나 ISA는 2023년 7월까지였던 2년 시한 내에 합의된 규정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법적으로는 기한이 만료되어 나우루 등은 채굴 계획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 실제로는 구체적인 규정 부재와 회원국 간의 이견 심화, 특히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 증폭으로 인해 어떤 신청도 승인되지 않고 있는 교착 상태이다.

현재 ISA 회원국들은 심해 채굴에 대해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중국, 노르웨이, 나우루 등 일부 국가는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핵심 광물 확보와 경제적 이익을 내세우며 채굴에 찬성하는 반면 , 프랑스, 독일, 스페인, 칠레, 뉴질랜드 등 최소 32개국 이상은 심해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 정보 부족과 잠재적 환경 재앙을 이유로 상업 채굴의 금지 또는 일시적 유예(모라토리엄)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러한 국가들은 채굴 규약이 마련될 때까지 상업 채굴을 하지 않기로 잠정 합의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24년 8월, ISA 총회에서 ’10년간 채굴 유예’ 입장을 보여온 브라질 출신의 레티치아 카르발류가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비록 카르발류 사무총장이 당선 후 중립을 지키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선출은 심해 채굴 강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

심해 생태계 파괴 우려 증폭

심해저 채굴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바로 환경 문제이다. 수심 수천 미터의 심해는 햇빛이 닿지 않는 극한 환경이지만, 아직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고유 생물종의 서식지이자 지구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곳에서 대규모 상업 채굴이 이루어질 경우, 채굴 장비로 인한 해저면 파괴, 퇴적물 기둥(sediment plume) 확산으로 인한 질식 및 서식지 파괴, 소음과 빛 공해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

환경 단체와 과학자들은 심해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이해와 환경 영향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상업적 채굴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며 예방적 접근 원칙에 따른 채굴 유예 또는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심해 생태계가 한번 파괴되면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 경제적 가치보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손실이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 구글, 볼보 등 일부 글로벌 기업들도 이러한 우려에 동참하여 심해 광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

‘바다 밑 노다지’ 향한 경쟁과 미래

환경 파괴 논란에도 불구하고 심해저 자원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막대한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톤 해역(Clarion-Clipperton Zone, CCZ)과 같은 특정 지역에는 육상 매장량을 훨씬 능가하는 규모의 망간 단괴(다금속 단괴)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망간 단괴에는 니켈, 코발트, 구리 등 전기차 배터리와 첨단 기술에 필수적인 금속들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바다 밑 노다지’로 불린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 광물의 잠재적 가치는 최대 16조 달러(약 2경 2천조 원)에 달할 수도 있다 .

한국 역시 1990년대부터 심해저 광물 탐사에 뛰어들어 북태평양 CCZ 해역에 독점 탐사 광구를 확보하고 기술 개발을 진행해왔다. 2016년에는 로봇을 이용한 망간단괴 채집 및 양광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 자원 확보를 위해 국제적인 채굴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

트럼프 행정부의 심해 채굴 추진은 기존 국제 심해자원 개발 논의 구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채굴을 추진할 경우, 다른 국가들도 자국법에 따라 채굴 허가를 시도하거나 국제해저기구(ISA) 체제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 해역 자원 개발 경쟁을 부추길 수 있는 한편, 심해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제적 논의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자국 이익과 공급망 안정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국제 해양 질서와 인류 공동 유산 보호라는 과제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미국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국제사회와 조율해 나갈지 주목되고 있으며, 심해 환경 보호와 책임 있는 자원 개발을 위한 규범 강화 논의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심해 생태계 보전과 자원 활용 간 균형을 위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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