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협상 전격 타결, 15% 관세와 4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 합의

한국과 미국이 상호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투자와 1000억 달러 에너지 구매 약속

8월 1일 미국의 25%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이틀 앞둔 7월 30일(현지시간), 한미 무역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부과하려던 25% 보복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한국으로부터 3500억 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약 138조원)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약속을 받아냈다.

협상 결과와 주요 내용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수반으로 한 한국 협상단은 워싱턴에서 막판 협상을 벌인 끝에 30일 오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면담하여 협상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이 대한민국과 완전하고 최종적인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브리핑에서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진다”며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25%에서 15%로 낮췄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앞서 미국과 각각 15% 관세율에 합의한 일본, 유럽연합(EU)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막대한 투자 약속의 대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내가 대통령으로서 직접 선정한 투자에 대해 350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1000억 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투자와 구매를 합친 총액은 4500억 달러(약 625조원)에 이른다. 3500억 달러는 올해 한국 정부 예산(673조원)의 72%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한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3500억 달러 투자 펀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500억 달러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로 미국 조선업 생태계 전반에 투자되고,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원전, 2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 분야에 투입될 예정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오늘 합의에 이르도록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 마스가 프로젝트”라고 언급했다.

FTA 체제의 사실상 종료

이번 합의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혜택이었던 무관세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과거 한미 FTA 체제하에서는 양국이 서로에게 평균 0%대 관세를 부과하는 호혜적 관계였으나, 이제 한국산 제품은 미국에 들어갈 때 15%의 관세를 물어야 하는 반면, 미국산 제품은 여전히 무관세로 한국 시장에 들어오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으며,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에는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며, 미국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완전 개방’은 미국 국내 정치용 수사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김용범 실장은 “식량 안보와 한국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쌀과 쇠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명확히 밝혔다.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 변화

자동차 업계는 25% 관세 위기를 넘긴 것에 대해 안도하고 있다. 2024년 한국의 자동차 대미 수출액은 347억 달러로 전체 자동차 수출의 절반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국인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타격이 있다. 일본은 기존 2.5% 관세에서 15%로 상승하여 실질적인 인상분이 12.5%포인트인 반면, 한미 FTA로 0% 무관세를 누리던 한국은 고스란히 15%의 관세를 부담하게 되었다. 과거 일본에 비해 가졌던 2.5%포인트의 가격 경쟁력이 사라진 것이다.

김용범 실장은 ‘FTA 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하며 “한국은 마지막까지 12.5%를 주장했지만, 미국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모두 15%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고 협상 과정을 설명했다.

한편, 50%의 고율 관세가 매겨진 철강, 알루미늄, 구리 등은 이번 협상 의제에서 제외되어 기존 관세가 그대로 유지된다.

전문가들의 엇갈린 평가

협상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측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일본, EU와 동일한 15% 관세율을 확보해 경쟁력 상실을 막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자유무역협정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본이나 유럽연합보다 불리하지는 않게 되었다”며 “잘한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이혜민 한국외대 객원교수도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EU와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FTA 체제의 붕괴와 막대한 대미 투자 약속을 근거로 ‘사실상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EU는 기존에 2.5~4% 관세를 내다 15%로 오른 것이지만, 한국은 사실상 0%에서 15%로 오른 셈”이라며 실질적 타격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는 “자유무역협정을 감안하면 더 낮은 관세율을 확보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투자 펀드의 수익성 논란

3500억 달러 투자 펀드의 성격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일본은 5500억 달러라는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 중 실제 현금 출자는 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출이나 보증 형태여서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 역시 “펀드는 출자, 대출, 보증의 세 가지 형태로 운영될 것”이라며 “일본보다 안전장치들을 훨씬 더 많이 포함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운용 방식과 수익 배분 구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밝혀 펀드의 수익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주 후 정상회담에서 세부사항 확정

이번 타결은 큰 틀의 합의일 뿐 세부 사항은 여전히 미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주 이내에 이재명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할 때 (추가) 투자 금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2주 뒤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이번 협상의 최종 내용을 확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정상회담에서는 4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및 구매 패키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검역 절차나 자동차 안전 기준 등 비관세 장벽 완화 요구 등 민감한 현안들이 논의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지킬 것은 지켰다’는 평가가 유효한지, 아니면 ‘더 많은 것을 내줘야 하는 상황’인지는 2주 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