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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아이 낳으면 5천 달러” 구상…미국 저출산 돌파구 될까
아이를 낳은 모든 산모에게 현금 5000달러(약 700만원)를 지급하는 이른바 ‘베이비 보너스’ 구상을 포함한 다양한 출산 장려책을 백악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의 저출산 대응 정책 방향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팔을 걷어붙인 배경에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진 출산율 지표가 자리 잡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당 1.62명으로, 인구 유지를 위한 기준치인 2.1명에 크게 못 미쳤다. 이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30년대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미국 내 출생아 수는 약 359만 명으로, 전년 대비 7만 6천 명 줄었고, 2007년 대비로는 17% 감소했다.
출산율 하락은 전 연령층에서 관측됐다. 특히 20~24세 여성의 출산율은 4% 감소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10대 출산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반면, 30대 여성은 소폭 상승세를 보이며 출산 연령이 늦춰지는 추세도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주거 불안정, 자녀 양육비 부담, 경력 단절 우려,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등을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경제성장 둔화, 사회보장 부담 증가, 세대 간 불균형 등의 구조적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백악관서 논의되는 파격 제안들: 5천 달러 현금부터 장학금 할당까지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행정부 백악관 참모들은 최근 몇 주간 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정책 전문가 및 시민 단체들과 접촉하며 구체적인 아이디어들을 수렴하고 있다.
비공개 회의 내용을 전한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백악관에 전달된 제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베이비 보너스’ 지급이다. 이는 아이를 출산한 모든 산모에게 5000달러의 현금을 일시불로 지원하자는 파격적인 구상이다.
이 외에도 ▲정부 후원 장학 제도인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장학금의 30%를 기혼자나 자녀가 있는 지원자에게 우선 할당하는 방안 ▲여성들이 자신의 생리 주기를 더 잘 이해하고 임신 가능 시기를 파악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션 더피 교통부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출산율과 혼인율이 높은 지역에 교통 예산을 우선 배정하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지난 3월 백악관 ‘여성 역사의 달’ 기념행사에서 체외 인공수정(IVF·시험관 시술) 지원 정책을 소개하며 스스로를 “수정(fertilization) 대통령”이라고 칭한 것이 대표적이다. 행정부 내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 등 다자녀를 둔 인사들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정책 추진에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책 둘러싼 시각차: ‘전통 가치’ vs ‘기술 활용’
다만 출산율 제고라는 목표는 같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해법에 대해서는 행정부 안팎에서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기독교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현대 사회의 문화적 요인을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정치와 대중매체가 전통적인 가족(남성과 여성의 결혼을 통해 형성된)의 가치를 폄하하고, 여성들이 자녀 양육보다 직업적 성공을 우선시하도록 부추긴 결과 혼인율과 출산율이 동시에 하락했다는 진단이다.
이들은 결혼과 다자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반한 가족 모델 회복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시험관 시술(IVF) 과정에서 인간 배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일론 머스크처럼 기술 발전에 긍정적인 ‘출산 촉진론자'(pronatalist)들은 IVF와 같은 새로운 생식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출생아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출산율 감소가 인류 문명의 존속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보다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기술 활용을 지지한다. 일례로 한 활동가 부부는 6명 이상의 자녀를 둔 어머니에게 ‘국가 모성 메달’을 수여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백악관에 제출하기도 했다.
현금 지원, 과연 능사인가? 해외 성공 사례의 교훈
‘베이비 보너스’와 같은 직접적인 현금 지원책이 과연 지속 가능한 출산율 반등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국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출산장려금을 지급했지만, 단기적인 효과에 그치거나 지원금만 받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이른바 ‘먹튀’ 논란을 겪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감사원 역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저출산 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거나 완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보다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은 ▲충분한 유급 육아휴직 보장(남성 포함) ▲저렴하고 질 높은 공공 보육 서비스 확충 ▲유연근무 확대 등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 구축에 집중 투자했다.
프랑스의 경우, 자녀 수에 따라 소득세 감면 혜택을 늘리는 ‘가족계수’ 제도, 만 3세부터 시작하는 무상 의무교육, 다양한 형태의 가족수당 지급 등 오랜 기간에 걸쳐 촘촘한 지원 체계를 마련해 유럽 최고 수준의 출산율(2023년 1.68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현금 지원보다는 부모의 실제적인 양육 부담을 덜어주고, 출산과 육아가 ‘벌’이 아닌 ‘축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현주소와 한국과의 비교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유급 출산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1993년 제정된 ‘가족 및 의료 휴가법(FMLA)’은 최대 12주의 ‘무급’ 휴가를 보장할 뿐이며, 이마저도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만 해당된다.
트럼프 행정부 예산안에 6주 유급 가족 휴가 계획이 포함되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자녀 세액 공제(Child Tax Credit)’ 제도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재정 지원을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자녀 세액공제(Child Tax Credit)’는 2025년 기준으로 자녀 1인당 최대 2,000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
이 중 최대 1,700달러는 환급 가능한 ‘추가 자녀 세액공제(Additional Child Tax Credit)’로, 세금 납부액이 적거나 없는 가정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반면, 한국의 아동수당은 만 8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 원씩 지급되며, 총 지원액은 약 960만 원에 그친다. 또한, 한국의 가족 관련 공공지출은 GDP 대비 1.56%로, OECD 평균인 2.29%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 이는 미국의 세액공제 제도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아동 지원 정책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출산율은 단순히 정부 지원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비싼 보육료와 의료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2023년 0.72명)보다는 2배 이상 높다. 이는 미국 사회에 여전히 가족 중심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남아있고, 특히 이민자 유입이 인구 구조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망 및 과제: ‘미국식 해법’ 찾을까
현재 백악관에서 검토 중인 ‘베이비 보너스’를 포함한 여러 정책 제안들이 실제로 얼마나 채택되고 구체화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미국 가족들을 북돋우는 정책을 자랑스럽게 시행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만약 추진된다 하더라도 재원 마련 방안, 정책 효과성에 대한 논란, 그리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미국 사회 내부의 정치적 합의 과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분명한 것은 저출산 문제가 더 이상 일부 국가의 문제가 아닌,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 역시 정면으로 마주한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핵심 과제로 저출산 해소를 내세운 만큼, 관련 정책 논의는 앞으로 더욱 활발히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이 막대한 재정 투입, 전통 가치 회복, 기술 기반 해법 등 다양한 접근법을 조율해 자국에 맞는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