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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환경보호청, ‘영구 화학물질’ 규제 고삐 푼다…국민 건강 논란 재점화
트럼프 행정부가 암과 면역 이상 등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독성 과불화화합물(PFAS)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미국 내 식수 안전과 국민 건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환경보호청(EPA)은 바이든 행정부가 확립한 식수 내 PFAS 최대허용기준(MCLs) 6종 가운데 4종에 대한 기준을 철회하고 재검토에 들어가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PFOA와 PFOS에 대해서는 기준치를 유지하지만, 수도 시설이 이를 이행해야 할 시점을 기존 2029년에서 2031년으로 2년 연장하면서 규제 부담을 완화했다.
환경단체들은 즉각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적 후퇴”라며 반발했고, 관련 업계는 막대한 정화 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규제 완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PFAS란 무엇인가: ‘영구 화학물질’의 특성과 건강 위협
과불화화합물(PFAS)은 자연 분해가 거의 불가능한 약 1만5천 종의 인공 화학물질로, 그 특성상 ‘영구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로 불린다. 물, 기름, 열에 강한 성질 덕분에 프라이팬의 논스틱 코팅, 방수 의류, 식품 포장지, 소방 거품 등 다양한 소비재와 산업재에 수십 년간 사용돼 왔다.
하지만 편리함 뒤에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PFAS는 인체에 축적되며, 소량 노출만으로도 신장암, 고환암, 간 손상, 갑상선 질환, 면역 기능 저하, 태아 발달 문제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EPA는 2023년 기준, 미국인 절반의 식수에서 PFAS가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CBS 뉴스는 PFAS가 공기, 물, 토양 등 거의 모든 환경에서 발견되며, 자연에서 사라지는 데 수천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위험성을 근거로 강도 높은 규제 정책을 추진했다. 2021년 ‘PFAS 전략 로드맵’ 발표에 이어, 2024년에는 PFOA·PFOS를 포함한 6종의 주요 PFAS에 대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전국 단위 최대허용기준(MCLs)을 확정했다.
이 기준은 27년 만의 식수 오염물질 신규 지정이자, PFOA와 PFOS에 대해 각각 4ppt라는 극도로 엄격한 수치를 적용한 조치였다. EPA는 이를 통해 약 1억 명의 국민의 노출을 줄이고, 수천 명의 조기 사망과 수만 건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철회: 내용, 배경과 ‘프로젝트 2025’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EPA의 정책은 뚜렷한 선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리 젤딘 신임 EPA 청장은 6종 PFAS 중 4종(PFNA, PFHxS, GenX, PFBS)에 대한 식수 기준을 철회하고, 과학적 타당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PFOA와 PFOS는 기준을 유지하되, 수도시설의 규정 준수 시한은 2031년으로 연장됐다. 소규모 및 농촌 지역 수도 시스템에는 기술 지원과 규제 유예 기회가 제공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수도시설협회와 화학업계가 제기한 법적 도전과 논리 구조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이들은 혼합 PFAS에 대한 규제 권한 부족, 신종 PFAS 기준 설정의 과학적 근거 부족을 지적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다.
EPA는 또한 산업 폐수 내 PFAS 배출 제한 관련 제안도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제안은 배출 제한 지침, 최적가용기술, 감시 기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EPA는 이와 별도로, 바이든 행정부 시절 지정된 PFOA와 PFOS의 ‘CERCLA(슈퍼펀드법)’상 유해물질 지정에 대해서도 재검토에 착수했다. 이 지정은 오염 유발 기업에게 정화 책임을 묻는 핵심 수단이지만,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며, 트럼프 EPA는 절차 중단을 요청해 승인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2025’의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 이 계획은 EPA의 과학적 결정 권한을 대통령이 임명한 정치 관리에게 집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규제 당국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법적·정치적 공방 예고…PFAS 정화와 환경 보건의 향방은
EPA의 조치 발표 직후, 환경단체들은 즉각적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NRDC는 “식수안전법상 기준 후퇴는 불법”이라고 지적했고, PEER 소속 전직 EPA 과학자는 정부가 고의적으로 소송에서 규제를 방어하지 않음으로써 기준 폐기를 유도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환경운동가들 역시 “유권자에게 건강을 되찾아주겠다는 약속과 배치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수도시설협회와 미국화학협회는 PFAS 규제의 과학적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 문제를 들어 규제 완화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ACC는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대표적 규제 반대 단체다.
PFAS 오염 정화는 여전히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과제로 남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정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3M과 듀폰 등 주요 제조사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부 주정부는 연방 기준보다 강력한 자체 기준을 운영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완화가 단기적으로는 산업계 부담을 경감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 건강과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시되는 선례가 남을 경우, 향후 다른 유해물질 규제 분야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구 화학물질’의 위협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지금,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과학 기반의 일관된 규제 체계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